‘인터넷 환경은 안녕하세요?’
2030세대의 아침 인사는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상이던 시절 ‘식사하셨어요’가 인사가 됐듯 디지털기기들로 둘러싸인 2008년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인사가 어울릴법하다. 새 전자제품을 발표하는 외국의 가전전시회에 전 세계인의 눈길이 쏠리고 대기업 회장은 올해의 메가트렌드로 ‘디지털라이제이션’(디지털화)을 내걸 만큼 현대인들의 삶은 디지털 기기와 그 문명에 휩싸여 있다. 편리함이 디지털시대 동전의 앞면이라면 그로 인해 생기는 ‘디지털 트러블’들은 어쩔 수 없는 동전의 뒷면이다. 타고난 디지털 세대인 20대 여성과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교차하는 30대 남성의 일상 속에서 그 동전의 앞뒷면을 살펴봤다.
◇“디지털은 내 생활”. 20대 네티워크세대의 하루
SK커뮤니케이션즈 검색포털사업부 블로그팀에서 근무하는 남윤지(27·여)씨의 하루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로 시작된다. 서울 태릉에서 서대문까지 1시간쯤 걸리는 출근길. 핸드백에는 컴퓨터와 연결해둔 휴대전화와 휴대용 게임기가 들어있다. “이 ‘친구’들과 함께하면 출근길이 지겨운줄 모른다”는 남씨는 “다만 작은 화면에 집중하다보니 눈이 뻑뻑하고 간혹 어지러워 보는 시간을 줄였다”고 말했다.
14층 사무실. 자리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PC를 깨우는 것. PC가 켜지면 바로 이메일 체크에 들어간다. 개인적인 의사소통은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이용하고 있어 메일은 대부분 업무에 관한 것들로 하루 100여통에 이른다. 스팸메일은 이보다 많은 200~300여통이라 삭제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하루 1회 정도 회의와 점심시간을 빼면 PC 모니터를 통해 파워포인트 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심지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동료와도 메신저나 메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일이 적다보니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종종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디자인관련 부서와의 작업시에는 아주 미묘한 부분까지 전달해야 하는데 메일과 메신저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대부분 업무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남씨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온 날은 하루종일 불안하다. 급한 전화를 놓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퇴근뒤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하는 일도 PC로 인터넷 접속하기다. 휴대전화를 PC에 연결해 틈틈이 찍은 사진을 저장하고.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관리한다. 또 인터넷 쇼핑으로 전에 봐둔 신발과 옷가지 등을 구입한다. 최근에는 작은 크기에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아이팟터치에 자꾸 관심이 간다는 남씨. “조만간 ‘지름신’지름신이 강림하실 것 같다”며 웃는다. 혹시 인터넷 중독의 단계인 것 같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접목한다”. 30대 IT 1.5세대의 하루
네이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이소민(35) 과장은 대학시절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일찍이 디지털 문화를 접한 IT 1.5세대. 넷스케이프가 나오기 전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왔다.
그의 하루도 휴대폰 알람과 함께 열린다. 타이머를 맞춰놓은 세탁기가 빨래를 끝내고 나면 옷가지를 널어놓고 걸어서 10분거리의 직장으로 향한다. 출근길 친구는 최근에 구입한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휴대폰에 저장된 중국어 회화를 들으며 걷는다.
전날 새벽까지 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다시 메일을 체크하고 오늘 할 일을 컴퓨터 스케줄러에 정리해놨다. “스케줄러가 시간에 맞춰 할 일을 알려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기 일쑤”라는 설명.
책상앞에 앉아 처음 하는 일은 모니터 파워스위치 켜기. 잠깐이지만 부팅시간만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없다. 매일 주고 받는 메일량만 많게는 200여통. e메일에 의존한 업무 진행에 문제가 있다고 간혹 느끼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메일을 읽는데만 하루 1~2시간이 걸린다. 협업 부서에서 업무와 관련된 메일을 주고 받다보면 자정을 넘기는 날도 허다하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며 “넘치는 정보를 빠짐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려다보니 그만큼 업무량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 과장의 취미는 만화보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만화를 찾아 전세계 사이트를 뒤지기도 하고 직업상 정보사냥을 다니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방대한 자료가 하드디스크에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가 겪는 디지털 트러블은 여기서 비롯된다. 자료 정리와 보관에 집착하다보니 과거 300메가바이트 하드디스크부터 500기가 바이트 하드디스크까지 정보를 꾹꾹 눌러담은 하드디스크가 빼곡하다. “하드디스크는 고장나면 끝이다. 그래서 자료를 백업하는 데 상당한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컴퓨터가 업그레이드되면 구형 하드디스크를 사용할 수 없다보니 과거 컴퓨터 메인보드부터 파워서플라이까지 집에는 잡다한 컴퓨터 부품들이 넘쳐난다.
이 과정에서 나름의 비법도 터득했다. 중요한 자료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해두었다가 혹시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받는 ‘휴먼 백업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것. 디지털시대의 고충을 아날로그적 아이디어를 접목해 해결한 셈이다. 네크워크가 되지 않을때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증상도 치유법을 찾았다. 뜻밖에도 “책읽기”란다. 디지털기기와 아날로그문화를 씨실. 날실로 엮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진욱기자 jwkim@-주소창에 '스포츠'만 치시면 스포츠서울닷컴 기사가 한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