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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변호사도 영어 잘해야 '출세'

venhuh 2008. 1. 6. 05:17
의사·변호사도 영어 잘해야 '출세'
[조선일보   2007-07-18 09:39:12] 

영어 되면 ‘국제통 폭넓은 업무’ 못하면 ‘지금 맡은 일이 한계’ 법조·의료계서 극명히 드러나 “영어 못하는 변호사는 이혼소송·교통사고만… 의대교수 임용땐 영어논문 위력”

영어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직장에서 맡는 업무가 달라지고, 나아가 출세와 소득까지 격차가 벌어지는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영어 격차)’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어 구사 능력이 ‘미래가 폭넓게 열린 사람’과 ‘지금 맡은 일이 한계인 사람’을 나누는 척도로 작동하는 이 현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의료·법조 등 전문직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나군호(40·비뇨기과) 교수는 중·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녔다. 연세대 의대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에 1년 반 근무하며 ‘로봇 수술’을 배워, 아시아에서 이 분야 최고전문가가 됐다. 비뇨기과 업무뿐 아니다. 세브란스병원 최고경영진은 외국 병원과 협약을 맺을 때 수시로 나 교수를 불러 일을 맡긴다.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선진 병원 운영기법을 익히고 인맥을 쌓았기 때문이다. 나 교수는 “존스 홉킨스 근무 경험이 그 뒤의 경력에 단단한 발판이 됐다”며 “솔직히 영어가 안 됐으면 그 자리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교수 A(47)씨는 지난 5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권위 있는 전공 학회에 초청장을 받았다. 병원에서 참가 경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A교수는 고심 끝에 사양하고 영어 잘하는 후배 전임강사를 대신 보냈다. 국내 박사인 A교수는 “내 분야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영어 때문에 해외 학회에서 강연 요청이 와도 번번이 포기한다”며 “학계에서 영향력을 키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의 ‘잉글리시 디바이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대학병원 교수 임용 심사다. 대학병원 교수가 되려면 권위 있는 학술지에 논문이 몇 편 실렸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대학병원 고위 관계자 B씨는 “과학인용지수(SCI·Science Citation Index)에 등재된 국제학술지에 논문 한 편이 실리면, 국내 학술지에 논문 20편이 실린 것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영어로 논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다.

영어 실력에 따라 진로와 출세와 소득이 갈리는 ‘잉글리시 디바이드’ 현상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집단 중 하나가 법조계다. 약사 출신 사법연수생 정순철(38)씨는 “한미 FTA로 법률 시장이 개방돼서 외국 로펌이 들어오고, 로스쿨이 생겨서 한 해 2000명씩 변호사가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며 “영어 못하는 변호사는 이혼소송과 교통사고 밖에 할 게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영어가 능통한 사람은 이런 고민에서 여유 있게 비켜서서 진로를 택할 수 있다. 사시 성적이 달려도 대형 로펌, 기업, 국제 기구 등 오라는 데가 많은 것이다.

이런 현실을 몸으로 겪은 사람이 6년차 변호사 C(38)씨다. 해외 연수·유학 경험이 전혀 없고 영어가 서툰 C씨는 로펌·기업 취직을 포기하고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냈다. 그는 “한 해 1000명씩 사시 합격생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라 이혼 소송, 교통사고 맡기도 쉽지가 않다”며 “사무실만 간신히 유지할 뿐, 집에 생활비를 못 줘서 아파트 월세가 다섯 달 밀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의 경우 연간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중 성적이 200위 안에 못 드는 중위권 연수생이라도 영어가 능통하면 대형 로펌에 취직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영어 무풍지대’였던 법원과 검찰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판사 D(42)씨는 “영어를 잘해야 론스타 사건처럼 다국적 기업이 얽힌 굵직한 사건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영어 못 하면 아예 못 맡는 사건’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윤식(42) 사법연수원 기획총괄교수는 올 초 2년차 사법 연수생들의 전문기관 실무수습 현황을 챙기다 깜짝 놀랐다. 같은 기수 연수생 1000명 전원이 공공기관·기업체·언론사 등 3~4군데 선택지를 놓고 고르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무려 14명이 유엔난민기구(UNHCR), OECD 본부, 미국 뉴욕의 일급 로펌 셔면&스털링 등 국제기구와 외국 로펌에 인턴 자리를 구해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에 처음으로 연수생 2명이 국내가 아닌 프랑스 로펌에서 인턴을 해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14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해외로 나간 14명의 공통점은 모두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능통하게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파주 영어마을에서 사법연수원생들이 영어연수를 받고 있다. /채승우 기자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이지혜 기자 wis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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