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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건 부자 지갑뿐" … 부자 마케팅 활기

venhuh 2008. 8. 17. 12:50
"믿을 건 부자 지갑뿐" … 부자 마케팅 활기
최상위 1% VVIP의 고가품 소비가 매출 유지 비결

부자들에게 미술품은 취미를 넘어 증여·상속의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60대 정모 씨 부부는 최근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즐기고 돌아왔다. 2주일 동안 대형 크루즈선을 타고 유럽 여러 나라를 도는 프로그램이다. 1인당 1000만원이 넘는 고가 상품이었지만 이마저도 겨우 등록했을 만큼 인기였다고 한다.

서울 신사동에 사는 김모 씨는 최근 두바이 6성급 마디나트 주메이라호텔에 머물며 세계 100대 드라이브 코스로 뽑힌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제벨 하피트 산간 및 아부다비 해안도로를 달렸다. 현대차동차 베라크루즈를 고입한 고객에게 주어진 혜택을 활용했다. 치솟는 물가와 불경기에 서민들은 죽을 맛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갑을 닫았다. 대신 기업들은 그래도 지갑이 좀 두툼한 부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백화점들은 벌써부터 상위 1% 고객 마케팅을 강화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6월 VIP 고객을 대상으로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최근에는 트리니티클럽(999명의 최상위고객) 회원에게 요트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위 1% 고객 매출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CRM팀 관계자는 “트리니티 회원의 연평균 구입액이 지난해 6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들도 중저가 위주 상품에서 고가 상품 개발로 돌아섰다. CJ홈쇼핑은 지난 5~6월 보석 브랜드 ‘명장’의 219만원짜리 브로치, 189만원짜리 진주세트를 판매했다. 회사 측은 50~60개 판매를 예상했지만 100개 넘게 팔았다. 150만원짜리 명품그릇 세트도 방송 때마다 500세트 가깝게 파는 등 인기를 구가했다. 불황 속 고가품 소비가 매출을 유지하고 있어 CJ 홈쇼핑은 VIP마케팅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 부자마케팅은 산업별로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인다. VIP마케팅이 활발히 진행되는 금융권에서는 부자들의 돈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을 선회했다. 골프나 문화 등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절세 상품을 제시하거나 법률 세무상담 서비스로 고객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수입자동차업계의 불황 타개 부자마케팅은 부자를 이원화하는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는 상위 1%를 대상으로 한 귀족마케팅을 유지한다. 반면 혼다, 폭스바겐, 푸조 등은 젊은 전문직 부자들에게 실속형 저가 모델을 팔아 톡톡히 재미를 봤다. 보석 등 명품업계에서는 희소성을 무기로 부자마케팅에 나섰다. 여행업계에서는 부자들만의 맞춤형 서비스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요트에서 석양보기’ ‘프로골퍼와의 라운드’ 등 남다른 경험을 주고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불황 가운데에서도 활발하게 부자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부자마케팅 격전 현장 1
금융업계
맞춤형 펀드·절세 상품 선봬

‘투자할 곳이 없다’.

요즘 부자들의 관심은 ‘투자’가 아닌 ‘지킴’이다. 부자들의 확고한 수익모델인 부동산시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금융상품에 대한 매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일부 펀드 투자로 쏠쏠한 수익을 거두기도 했지만 현재 1500대로 뚝 떨어진 코스피지수에 마음을 두는 부자는 거의 없다. 일단 현금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최철민 미래에셋증권 서초로지점장은 “올 초 주가가 빠질 때만 해도 저가 매수를 노려 펀드에 가입하려는 고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일단 지켜보자’ 심리가 강해 단기 고금리 상품에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최 지점장에 따르면 고객의 절반 정도는 수시 입출금이 가능하면서 5% 이상 고금리를 주는 머니마켓펀드(MMF)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상품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0.25% 올림으로써 이들 상품에 대한 매력은 더욱 커졌다. 좀 더 길게 투자하는 고객은 6%대의 금리를 주는 유동화기업어음(ABCP)이나 원금을 보장해주면서 고수익을 올려주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부자를 위한 맞춤형 상품도 은밀히 출시된다.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사모펀드가 대표적이다. 사모펀드의 설정액은 통상 30억원 이상이다. 국내 한 외국계 은행에선 최근 1인을 위한 부동산 사모펀드를 마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센터장은 “주식형 펀드로 수익률에 대한 투자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데다 최근 안전하다고 했던 ELS 상품도 주가 폭락으로 원금을 까먹다 보니 수익률이 보장되면서 안전한 틈새 부동산에 투자자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최소 30억원 이상 투자해야 하는 이 상품의 예상 수익률은 8.5~10%다. 부동산 외에도 와인이나 미술품, 드라마 등에 투자하는 특별자산펀드도 사모 형태로 인기리에 판매된다.

수익형 부동산 등 사모펀드 투자

기업들은 또 부자들이 상속·증여·절세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부자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6월 삼성생명 FP센터가 30억대 자산가들의 투자성향을 분석한 결과, 부자들이 재무 설계를 받고 싶어 하는 분야는 상속·증여(30%)였다. 금융투자(28%)와 부동산투자(13%)는 그 다음. 금융 업체들은 연금 등 비과세 저축형 상품에 가입해 금융소득종합과세(38.5%)를 피하거나 자식을 종신보험에 가입시켜 상속세를 한 푼도 안내는 방법 등도 상세히 컨설팅해준다.

한발 더 나아가 요즘 PB들은 0.1%만을 위한 초특급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자산관리 상담을 넘어 2세 결혼, 자녀 진로 상담 등 집안의 대소사 상담까지도 제공하면서 불안해진 고객들의 마음을 잡기에 여념이 없다.

이길영 미래에셋생명 팀장은 최근 VIP 고객을 대상으로 ‘청소년 경제·금융특강과 진로 유학 상담 프로그램’ 행사를 마련했다.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경제교육과 유학, 진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나대투증권은 지난 6월에 청담금융센터점에서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을 초청해 고객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부자마케팅 격전 현장 2
수입자동차업계
저가형으로 젊은 세대 공략

혼다 뉴어코드
경기침체와 고유가가 수입자동차시장을 강타하지는 않았을까?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수입차시장은 지난해 대비 30% 넘게 성장했다. 최근 몇 년 새 상승세가 한번도 꺾인 적이 없다. 지난 6월까지 3만4000대 가까이 팔려 사상 첫 점유율 6%를 넘어섰다. 연말까지라면 7% 돌파도 무난해 보인다.

다만 불황 속 수입차 마케팅은 새로운 양상을 나타냈다. 아예 고가이거나 아예 저가 차량을 파는 이른바 ‘양극화 마케팅’이다.

적당한(?) 부자를 상대로 저가형 모델을 내놓은 전략은 크게 성공을 거뒀다. 저가라고 해 국산차보다 싸지 않다. 그래도 수입차를 탄다는 자존심을 높여주면서 무리하지 않은 가격을 제시해 ‘체면과 실리’를 동시에 살려줬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혼다다. 혼다는 올해 들어 월평균 1000대 이상 팔아 수입차시장 1위 자리를 확고하게 다졌다. 스타 상품은 단일모델로 월 500대 이상 팔린 뉴어코드. 올해 1월 출시한 뉴어코드 가격은 3400만~3900만원. 결코 싼값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혼다 측은 “혼다의 브랜드 이미지와 품질을 고려하면 저렴한 차”라고 적극 내세워 돌풍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폭스바겐 골프 2.0TDI 디젤모델도 비슷한 성공사례다. 역시 3100만원으로 절대값으로는 저렴하다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입차 가운데 저가 모델’인 점을 강조하면서 부유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상반기 89대밖에 팔리지 않았던 골프 2.0TDI 모델은 올해 같은 기간 400대가 넘게 팔려나가 4배 넘게 성장했다. 실제로 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4000만원대 미만 모델의 지난해 대비 판매증가율이 60%를 넘어 불황 속 호황세를 구가했다.

실리형 부자마케팅과 함께 전통적인 귀족마케팅도 효과를 보고 있다. 고유가에 치명적이라고 생각했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을 적극적으로 들여오거나 스포츠카와 같은 억대 럭셔리카를 내놓는 식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고 2억원짜리 스포츠카 3종을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 부자들에게는 경기침체나 고유가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인피니티도 ‘기름 먹는 하마’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대형 가솔린 SUV인 FX를 새롭게 선보였다. 800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고급 휘발유만 넣어야 한다.

리터당 8km도 달리기 어려울 만큼 연비마저 좋지 않다. 하지만 독특한 디자인에 390마력에 달하는 엄청난 파워로 부자들의 구매가 잇따르고 있다. 포르쉐도 2억원에 가까운 911라인업 4종을 선보여 VIP 마케팅을 본격화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부자들에게 저가형 모델 판매전략을 편 점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부자마케팅 격전 현장 3
명품업계
희소성+재테크 상품 집중

대중화된 국내 명품시장에서 부자들은 ‘명품 속 명품’을 찾는다. 남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희소성이 높은 상품을 미리 주문하거나 재테크 목적으로 초고가 상품을 구입한다.

채정원 신세계 해외명품팀 과장은 “최근 경기가 불황인 데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보니 증여나 상속 수단으로도 초고가대 명품들을 구입하는 듯 보인다”고 밝혔다. 억 단위의 명품들은 희소성이 높은 데다가 나중에 팔 때도 값어치를 더 인정받기 때문에 예약이나 선주문을 통해 구입한다는 설명.

오는 9월 결혼을 앞둔 구희진 씨(27)는 예물로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선물받았다. 구 씨는 “처음엔 남들처럼 3부나 5부 다이아몬드를 하려고 했지만 나중에 팔 때의 가치를 생각해 1캐럿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5부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500만원 전후인 데 반해 1캐럿 다이아몬드는 기본 2000만원을 호가한다.

명품 주얼리 업체 티파니의 이소연 차장은 “최상품이나 희귀품의 경우 예약을 해놓고 몇 달을 기다려서 산다”고 말했다. 티파니는 전년 대비 10% 가까운 매출 신장을 거뒀다.

푹푹 찌는 한여름이지만 억대의 명품 모피도 호황을 맞았다. 이들은 밍크보다 10배 이상 비싼 세이블(담비), 친칠라(다람쥐과), 링스(시라소니) 등의 소재로 만든다. 팬디의 경우, 7월 판매량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모피 매출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신장됐다.

이효원 팬디 홍보부장은 “지난해보다 가격이 20~30% 가까이 올랐지만 유로화 강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거란 전망이 우세해 물량이 많은 지금 싸게 사자는 고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백화점 내 명품 매장은 불황 속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각 백화점들의 명품 매출 성장률(6월 말 기준)은 신세계 43.9%, 롯데 40%, 현대 25% 등 각각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때문에 백화점마다 VIP 서비스와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롯데백화점은 약 3만명이었던 MVG(Most Valuable Guest) 회원들을 7월부터 △프레스티지(1600명) △크라운(4년 연속 MVG·5000명) △일반 MVG로 구분해 서비스를 차등화했다. 최상위인 프레스티지 회원에겐 쇼핑도우미인 ‘콘시에즈(Concierge)’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부자마케팅 격전 현장 4
여행업계
남들과 다른 경험 강조

여름 휴가철, 여행업계도 부자 마케팅이 한창이다.

국내 여행 시장에서 명품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안 된다. 하지만 그 수익성은 일반 여행 상품보다 3~4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투어는 지난 4월 기존 고가 여행 브랜드인 JM(Jewelry Mode)사업부를 JM-크루즈사업부로 격상시켰다. 6월에는 명품여행 전문사이트 ‘JM 스페셜닷컴’을 열었다.

웹상에서 전문사이트를 구축한 것은 이번이 업계 처음이다. 고객들은 이 서비스를 통해 본인 취향에 맞게 호텔, 식사, 차량 등을 맞춤으로 제공받는다. 하나투어도 지난 4월 맞춤 여행 전문 VIP팀을 신설했다.

정기윤 하나투어 팀장은 “VIP 상품들은 주로 럭셔리한 서비스로 제공된 경향이 강했는데, 요즘엔 본인이 원하는 취향에 맞게 실속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보니 여행사에선 고객의 요청을 받아 직접 상품을 만들어준다.

한발 더 나아가 여행사에선 직접 상품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게 부자들의 공통된 요청이기 때문이다.

‘요트에서 석양보기’ ‘프로골퍼와 라운딩’ ‘제트기 타고 여행’ ‘쇼 출연진과 칵테일 파티’ 등 희망사항도 다양하다. “특히 미술이나 뮤지컬, 서커스 등 문화 체험 여행이 인기”라고 여행사는 전했다.

강정화 모두투어 홍보 담당자는 “최근 국내 와인열풍이 불면서 와인 본고장을 직접 둘러보는 체험 여행을 문의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명품여행으로 선호되는 지역은 유럽과 미주 지역. 특히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뒤 재방문을 원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다시 찾는 여행지인 만큼 자신만의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것이다.

상품 가격도 천차만별. 적게는 15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럼에도 수요는 줄지 않는다.

모두투어 측은 “상반기 실적이 전년 전체 매출에 달할 만큼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크루즈 여행도 색다른 여행을 찾는 관광객들의 단골 상품.

올 1월 크루즈인터내셔널에선 국내 최초로 남극 대륙을 갔다 오는 크루즈 상품을 내놓았다. 가격도 1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지만 이미 13명이 다녀왔다.

유인태 크루즈인터내셔널 사장은 “부자라고 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고급 여행을 찾는 건 오해”라며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것에 도전하고 재미를 찾는 것이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12월 2차 남극 여행을 기획 중이다. 벌써 10여명이 예약했다. 최근엔 30일간 남미 아마존을 여행하는 1000만원짜리 크루즈 상품도 내놓았다.

[명순영 기자 / 김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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