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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메들리'는 녹음 속도도 초고속?

venhuh 2008. 2. 3. 12:11
'고속도로 메들리'는 녹음 속도도 초고속?

판매량 최고 '4대 천왕'… 무명 가수 넘쳐
이익 많지 않아 하루 20곡씩 빠르게 제작

김영민 기자 now@chosun.com
신다정 인턴기자(고려대 노어노문학과 4년)
입력 : 2008.02.02 00:48 / 수정 : 2008.02.02 17:26


설 귀향길.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로 접어들면 어김없이 메들리 트로트 음악이 들려온다. 전국 149개 휴게소에선 지금도 한 장소당 주말 평균 50장씩 메들리 앨범이 팔려나간다. 대형 할인마트를 제외하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고속도로 메들리' 앨범. 아직도 테이프와 CD의 판매 비중이 60대40이라는 이 앨범은 누가 만들고, 어떻게 유통되는 걸까?

◆고속도로 가수 4대 천왕

고속도로 음반 세계에도 잘나가는 스타들이 있다. 메들리 음반 1000만 장을 넘은 4명의 가수 김란영, 김용임, 진성, 신웅이 바로 그 주인공.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앨범 판매량만으로 따져 '고속도로 4대 천왕(天王)'이라 불린다.

노래 인생 30년째인 진성(45)씨는 고속도로 음반 시장에서는 10대 인기가수 '빅뱅'보다 인기가 높다. 80여 장의 메들리 앨범과 개인 앨범 5장, 판매량 1000만 장을 넘고 보니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는 알아듣는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유랑극단을 전전하다 20대에 들어서는 밤무대 행사를 뛰었다. 그러던 중 한 작사가로부터 트로트 메들리 음반을 제의 받았고, 20년째 메들리 노래를 불러왔다.

하지만 1000만 장 판매라고 해도 메들리 앨범 한 장당 가창료 100만~50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대신 그 '명성'으로 한 회 20만~30만원씩 받으며 야외 행사장이나 변두리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주 수입원이었다. 음반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앨범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게 메들리 시장의 관례다.

상황은 40대 메들리 가수 김란영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88년부터 90년대 초까지 3000만 장의 카페 시리즈를 발매, 고속도로 음반계에선 '카페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카페 노래' '뮤즈 카페' '카페 드라이브'가 다 그의 작품이다. 짧게 자른 머리에 보라색으로 부분 염색을 한 김씨는 "최근까지 61집을 냈다"며 "나름대로 여왕이란 칭호도 얻었지만 음반이 많이 팔렸다고 해서 따로 판매 수익을 받은 것은 없다"고 했다.

  •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반 판매점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메들리 음반./신다정 인턴기자
◆어떻게 만들어지나

고속도로 음반 제작은 기획부터 판이 나올 때까지 보통 한 달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음반사에서 가수 선발, 음반 기획, 제작까지 도맡아 진행한다. 음반을 기획, 제작할 수 있는 음반사는 10곳도 되지 않는다.

녹음 속도는 초고속이다. 보통 3시간30분 단위로 20만~25만원을 주고 녹음을 한다. 한 시간에 3곡까지 녹음 작업이 이뤄질 때도 있고, 하루 만에 20곡의 녹음을 끝낼 수 있을 정도다. 윈윈엔터테인먼트 남궁린 사장은 "메들리 가수들은 2~3일에 30~40곡을 녹음한다"고 했다.

메들리 음반에 제작비를 많이 들이지 않고 속전속결로 만드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남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CD 2장짜리 메들리 음반을 놓고 볼 때, 제작사의 출고 가격은 3000원. 이 중 CD 값 800원(한 장에 400원), 재킷 디자인 비용 150원, 저작권료 600원을 빼면 이윤은 1450원 정도다. 1만 장을 팔면 1450만원이 남는다. 2장짜리 테이프 가격 역시 비슷하다. 여기에 가수의 가창료로 500만원 정도를 지불하면 1000만원 정도가 제작사의 몫. 6000~7000원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일반 대중가수 앨범의 절반 수준이다.

온라인 다운로드가 없고, 동네마다 음반 가게가 있었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잘 팔리는 앨범은 100만 장도 넘게 팔렸다. 소위 '짝퉁'이라 불리는 1000~2000원짜리 불법 앨범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메들리 음반이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형 할인점에서만 유통되는 지금 상황에서는 한 앨범을 1만~2만 장 팔기도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사람들의 말이다. 10년 넘게 메들리 가수의 가창료가 오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름없는 무명 가수들

무명 가수의 경우, 제작사는 가창료 대신 음반을 주는 식으로 목소리 값을 해결하기도 한다. 가수들은 라이브 카페에서 자기 음반을 홍보하면서 1만원 정도에 판매하고, 그것으로 가창료를 대신한다. 본인의 이름을 넣은 앨범을 발매하고 싶은 가수와 제작비를 아끼려는 제작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때 판권과 인세 모두 제작사가 갖는 게 일반적이다. 스타원엔터테인먼트 류재민 사장은 "내가 아는 무명 가수만 100명이 넘는다"며 "가창료 대신 음반 500장만 만들어 주면 노래를 하겠다는 가수도 넘쳐난다"고 했다.

무명 가수들이 앨범을 내기 힘들어진 데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다. 기획사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까지만 해도 라이브 카페에서 인기를 얻고, 앨범 한 장을 낸 다음 방송을 타면서 인기를 얻으면 스타 가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 기획사가 매년 쏟아내는 '아이돌 스타(ldol star)'만으로도 연예인 가수들이 넘쳐난다.

◆음반 불황에 허덕이는 고속도로 음반

남의 노래에는 항상 저작권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메들리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야 원곡을 불법으로 가져와 만들어 파는 일이 횡행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 앨범도 합법적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저작권 단속을 피해보려는 잔꾀도 나온다. 인지를 불법 복제해내는 '인지 상인'이 그들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복제팀 안승진씨는 "인지 가격을 아끼기 위해 저작권료가 적게 나가는 민요, 클래식 앨범의 인지를 받아 트로트 앨범에 붙여 판매하기도 한다" 했다.

고속도로 음반은 음반계 불황의 직격탄을 빗겨나고 있을까. "불황을 모른다"고 알려진 고속도로 음반계도 매출 감소에 허덕이고 있다. 음반 기획사도 줄고, 남은 기획사마저 기존에 있던 앨범을 판매하거나 제작을 중지했다. 왕년에 음반계를 주름잡던 오아시스레코드는 규모가 반으로 줄었고, 지구레코드, 아세아레코드는 제작을 중단했다. 그나마 활발하게 활동하는 메들리 음반사는 5곳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기존에 판매되는 앨범만 판매하거나 1년에 1~2개의 앨범만 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 3000만장 메들리 음반 판매의 주인공 김란영씨.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메들리계의 여왕이라 불린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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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고속도로를 탈 때쯤이면 휴게소에서 늘 마주치던 트롯트메들리 테이프(음반?)에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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