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방송/연예업계

전국 26개 '드라마 세트장'의 그늘

venhuh 2008. 1. 19. 23:37

[Why] 전국 26개 '드라마 세트장'의 그늘

조선일보|기사입력 2008-01-19 21:41 |최종수정2008-01-19 21:59 기사원문보기

경북 문경새재도립공원 내‘대왕세종’세트장.‘ 태조왕건’세트장 자리에 새롭게 들어서고 있다. /김영민 기자

"돈 된다" 지자체들 앞다퉈 건설…테마공원 등 야심찬 출발

드라마 끝나면 관광객 발길 뚝… 불법 토지 용도변경도 문제


경북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태조왕건' 세트장은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대형 레미콘 차량이 드나드는 와중에 인부들은 조선시대 궁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지고, 목재를 나르고, 기둥을 올렸다. 광화문, 동궁,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이전 고려시대 세트장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롭게 조선의 궁을 올리는 것. 지난 5일 첫 회를 시작한 KBS '대왕세종'의 오픈 세트장이 올 3월 완공을 목표로 들어서고 있다.

전국에 지어진 사극 세트장은 현재 26곳에 이른다. KBS만 해도 통일신라시대부터 1945년 서울 시내까지 7곳의 오픈 세트장을 보유하고 있다. 각 방송사들은 1999년을 시작으로 수십억 대의 돈을 들여 대규모 세트장을 만들어왔고, 최근 종영된 MBC '태왕사신기'는 제주도 묘산봉 관광지구 내 세트장 건립 비용에만 130억원을 들였다.

◆무너지는 세트장

문경의 '태조왕건' 세트장은 '대왕세종'으로 타이틀이 바뀌는 과정에서 사업 주체가 바뀌었다. KBS가 52억6000만원, 문경시가 3억원을 각각 부담했던 것이 이번 공사에선 반대로 문경시 60억원, KBS 5억원으로 책정됐다. 애초 KBS가 사극 촬영을 위해 자체 예산으로 세트장을 지었지만, 몇 년 사이 지자체가 사업비를 대고 관광특구로 개발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태조왕건' 세트장의 성공으로 각 지자체들이 방송사 세트장 유치에 올인하면서 세트장 유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1999년 41만7000여명이 찾던 문경새재도립공원은 '태조왕건' 세트장 건립 이후 일순간 206만9000여명으로 관광객이 늘었고, 그 이듬해까지 200만명이 넘는 입장객 수를 자랑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세트장은 사극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그 인기가 급격히 식어버린다. 태조 왕건 세트장이 재건립에 나선 것도 한 해 100만명 수준으로 떨어진 관광객 수가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 공원 입장료 2100원, 1년 20여억원의 예산으로는 세트장 유지와 공원 보수도 빠듯한 실정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변상진 주사는 "현재 세트장에 재투자를 하고 있지만 투자한 만큼의 수입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며 "사극 드라마가 종영된 뒤 방송사가 재사용하면서 세트장을 유지·보수하는 것을 제외하면 세트장 건물은 그대로 방치되어 왔다"고 했다.

상황은 다른 지역 세트장도 마찬가지. 40억에 달하는 도비와 시군비가 들어간 SBS 토지의 횡성테마파크는 2005년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주변 땅값만 2배 이상 뛸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곳. 하지만 최근에는 주말에만 200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평일 관광객은 거의 없다. 이 외 용인시 시비 60억원이 충당된 MBC 신돈 세트장, 충북 제천시가 12억원을 투자한 KBS 세트장, 충남 부여군이 60억원을 들인 SBS 서동요 세트장 역시 방송 종료 이후 관광객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횡성테마파크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홍보가 많이 돼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이후에는 급격히 관광객 수가 줄어들었다"며 "기대할 수 있는 다른 홍보 수단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세트장 건설의 함정

지자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역 간 원치 않는 마찰 또한 나타나고 있다. 나주시의 '주몽' 세트장과 용인시의 '신돈' 세트장이 대표적이다. 2004년 용인시는 MBC와 양해각서를 체결, 향후 420억원씩을 투자해 대규모 테마파크를 짓기로 약정했다. 용인시로서는 MBC의 시대별 종합 세트장을 유치해 새로운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신돈' 세트장 건립에 시와 방송사는 60억원씩을 투자했고, 2010년까지 종합 세트장을 완공할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MBC '주몽'이 나주시로 세트장을 옮기면서 틀어졌다. 외주제작사와 함께 MBC가 전남 나주에 새롭게 '주몽 세트장'을 건립하자 용인시는 양해각서 자체가 효력을 잃었다고 판단했고, 지금까지 신규 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용인시 사업개발과 조억제 과장은 "양해각서에 방송사 프로그램 편성 상황에 따라 투자 계획이 조정 가능하다는 별첨 문구가 있다"며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계획했던 세트장이 다른 지방으로 넘어갔고, 60억을 투자한 신돈 세트장은 지금껏 아무런 수입 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신돈 세트장'은 '용인MBC드라미아'라는 문패만 걸려있을 뿐 관광객을 비롯한 외부인 출입은 일체 통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트장 건설 붐에는 지자체와 함께 드라마 외주제작사들도 한몫을 한다"고 지적한다. 외주제작사들은 방송사의 세트장을 이용하지 않고, 따로 세트장을 짓고자 한다. 이때 제작사들은 외부 투자업체나 지자체를 끌어들여 드라마 테마공원 겸용 세트장을 조성한다. 더 많은 금액의 제작지원금을 받으려는 제작사의 바람과 투자자의 관광 수익에 대한 기대 심리가 맞아떨어져 새로운 세트장이 생겨나는 것. 한 드라마 세트장 관련업자는 "언론에 공개되는 수십억, 수백억 규모의 세트장 건립 비용의 일부는 실제 외주제작사의 이윤으로 남게 된다"며 "어떤 나무를 쓰고, 어떤 방식으로 짓느냐에 따라서 제작 단가도 20~30% 정도 달라진다"고 했다.

과도한 세트장 건립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는 지자체 토지의 용도 변경이다. 개발이 제한된 산지나 농경지에 세트장을 불법적으로 건립하고, 주변 토지를 관광자원 활용이란 명분으로 상업 용지로 전용하는 것이다. 경기도 양평의 황진이 세트장과 전남 나주의 주몽 세트장의 산지관리법, 건축법 위반 등이 그 예이다. 황진이 세트장은 외주제작사와 협약을 맺은 시공사가 30억원을 들여 세트장을 건설하던 중 불법 건축물로 판명났다. 또, 주몽 세트장은 무허가 세트장을 지은 혐의로 현직 시장이 산지법 위반으로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영상산업정책연구소 김도학 소장은 "지자체나 투자업체가 드라마의 명성만 믿고 대규모 세트장을 만들어냈다"며 "하지만 대부분이 완성도가 떨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광자원으로서의 효용성이 사라져버리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문경도립공원 내 태조왕건 세트장의 자리에 새롭게 대왕세종 세트장이 지어지고 있다. /김영민 기자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태조왕건 세트장이 대왕세종 세트장으로 새롭게 지어지고 있다. /김영민 기자

[김영민 기자 now@chosun.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