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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가 돌려보던 ‘찌라시’, 인터넷으로 전국민이 본다

venhuh 2008. 1. 19. 23:35

소수가 돌려보던 ‘찌라시’, 인터넷으로 전국민이 본다

중앙일보|기사입력 2008-01-19 14:06 |최종수정2008-01-19 15:04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이여영] 지난해 가을부터 퍼지기 시작한 가수 나훈아 관련 소문이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문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다. 당장 언론의 반응부터가 심상치 않다. 예전 같았으면 괴소문으로 치부해버렸을 일을 이제는 모든 언론이 취재에 나서고 있다. 새해 들어 주요 일간지가 모두 이 소문을 보도한 데 이어, 17일에는 KBS의 8시 ‘뉴스타임’에까지 등장했다. 더욱이 소문의 주역을 아예 실명으로 밝히고 있다. 소문의 진원지였던 부산 지역에서는 아예 경찰이 나서서 출입국과 병원 입원 기록, 잠적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괴소문 인터넷 타고 일파만파

물론 소문과 관련돼 현재까지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국내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나훈아 역시 직접 나서서 정면 부인하지 않아 소문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와 경찰의 확인 작업, 그리고 당사자의 침묵이 어우러져 많은 국민들은 소문을 소문 이상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쯤 되자, 피해가 예상되는 소문의 조역들이 다급해졌다. 급기야 16일에는 영화배우 김혜수가 나훈아 관련 소문 관련설을 공식 부인하고 나섰다. 이번 소문에 대해 최초의 관련 당사자 반응이다. 오히려 소문을 증폭시킬 위험을 무릅쓰면서 정면 대응하고 나선 데는 사정이 있다. 김혜수의 소속사인 싸이더스HQ 측은 “소문이 급속도로 확산돼, 인터넷에 김혜수를 검색하면 ‘나훈아’‘야쿠자’ 등이 동시에 뜨는 지경에 이르러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선아 측근 역시 일부 기자에게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나훈아 관련 소문은 왜 이렇게 사실인 양 급속도로 퍼지게 됐을까? 그 진원지로는 인터넷이 꼽힌다. 이번 사건은 악성 루머를 대거 양산하고 신속하게 유통하는 인터넷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는 지적이다. 과거 이런 부류의 소문은 소수가 공유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을 통해 온 국민이 보는 만큼 그 폐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악성 루머의 대표적 유통 경로는‘찌라시’(광고 전단지를 의미하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라고 불리는 정보지였다. 이를 제작해 배포하는 이들은 정보에 이해관계가 있는 민간 기업 소속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증권사 관계자들과 대기업 정보팀, 언론 종사자 일부가 여기에 포함됐다. 정보지는 이들 사이에서 쉬쉬 하며 유통된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피해자를 낳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악성 루머가 떠돌 경우 정보기관이나 검찰ㆍ경찰이 관련자들를 구속하는 경우가 몇 번 있기는 했다.

근거없는 소문이 다시 활자화돼서 유통

반면 나훈아 관련 괴소문은 유포 방식 자체가 과거와 크게 다르다. 정보지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삽시간에 퍼졌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희생자들이 대거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훈아 사건은 한 마디로 1998년 O양 비디오 사건 당시부터 시작된 루머의 유통 혁명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나훈아 관련 소문의 발단은 과거와 다를 바 없었다. 소문이 날 만한 단서가 있었다. 매년 디너쇼를 여는 나씨는 지난해 3월 이를 위해 대관해둔 무대의 예약을 취소했다. 그 후 기획사와 인척이 운영하던 식당까지 정리했다. 당연히 방송가와 연예계에서는 그의 잠적설이 돌았다. 그 이유에 대한 억측도 구구했다. 그 가운데 가장 선정적인 소문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떠돌았다. 정보지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과거 방식 그대로였다.

문제가 커진 것은 일부 스포츠연예 신문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이 소문 내용을 활자화하면서부터다. 네티즌들이 영문 이니셜로 표기된 소문의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은 매년 디너쇼를 여는 톱스타 4~5명 가운데서,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남성 가수로 나훈아를 지목했다. 여기에 출처는 물론 내용까지도 믿기 힘든 각종 제보까지 곁들였다. 결정적으로 이 소문을 키운 것은 나훈아와 관련된 과거의 언론 보도였다. 특히 한 개그맨이 자신의 이혼과 도박의 원인 제공자로 나훈아를 지목한 기사의 영향이 컸다. 이 기사 역시 당사자를 영문 이니셜로 보도했지만, 네티즌들은 나훈아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서는 그의 여성 편력과 관련된 기사와 동영상이 줄을 이었고, 관련 검색어도 늘어만 갔다. 소문 관련 당사자로 거론된 여성 연예인들도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는 인터넷은 다시 언론 보도의 근거가 됐다. 이는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이다. 과거 정보지에 등장했던 소문들은 언론에 등장하는 법 없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불투명한 연예계, 괴소문 온상으로"

소문의 유통 채널로서 인터넷이 정보지와 다른 점은 뭘까. 과거의 정보지는 정치 관련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정치 정보에 기업의 사활이 걸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보지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제5공화국 들어 재계 9위의 국제그룹이 정권에 밉보였다는 이유로 공중 분해된 후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과거 정보지에도 연예인 관련 소문이 등장했지만, 어디까지나 양념에 불과했다. 반면 인터넷에서는 연예인 소문이 압도적으로 많다. 기본적으로 네티즌들이 연예계에 떠도는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1990년대 초반 정보지 시장에 대한 조사를 하기도 했던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불투명한 구석이 있는 분야야말로 악성 루머의 온상이 된다. 정치가 투명해진 다음부터 지금은 연예계로 루머의 온상이 옮아갔다.”연예계 악성 루머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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