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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외로움 실은 ‘무표정 지하철’

venhuh 2008. 1. 14. 16:00
도시의 외로움 실은 ‘무표정 지하철’
‘대도시의 지하세계:길 잃은 유목민’ 전


» 금혜원의 〈추상공간 3〉.
가장 이용자가 많은 지하철 역은 2호선 강남역. 하루 평균 12만명이 넘는다. 가장 이용자가 적은 곳은 역시 2호선 도림천역. 1천명이 겨우 넘는다. 120배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전자가 사무실 밀집지역이고 후자는 뜸한 거주지역이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생긴 분당선 구룡역. 1km밖에 안 떨어진 도곡역과 개포동역 사이에 뒤늦게 생긴 까닭은? 주민들이 세게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 지하철 승객들은 왜 닫히는 전동차 문을 향해 마구 달려들까? 일단 타고 나면 그들은 왜 무표정해질까? 왜 서로 시선을 피한 채 핸드폰을 가지고 놀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작가 9명과 연구자 6명이 참여한 기획전시회 ‘대도시의 지하세계:길 잃은 유목민’(덕원갤러리·9~22일)은 이런 문제에 대해 미술계가 던지는 질문과 나름의 대답이다. 사회과학적 설득력과 무관하게 무척 참신하다.

예술가 9명·연구자 6명 참여해
‘지하철’ 공간과 사람들 탐구
“현대 삶이 한눈에 보이는 곳”

» 안효진의 〈시선 콜렉션-제2콜렉션〉 일부, 민지애의 〈구룡역에 용이 나타났다〉, 이혜승의 〈입구, 한성대〉(위 부터).
■ 지하철이 뭐기에 = 서울시민의 절반 이상이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전동차는 버스와 달리 무척 길고 몇 분 단위로 자주온다. 그때문에 지하철은 만남의 장소가 되지 않는다. 같은 노선, 같은 역을 이용할지라도 거의 엇갈린다. 지하철은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에 보내주는 미덕이 강조될 따름이다. 이용자들에게 지하철은 출발지와 도착지로 인식된다.

지하철 공간은 대부분 터널이다. 내리고 타는 짧은 역 구간 말고는 모두 캄캄한 터널이다. 다른 터널에는 이름이 있지만 이 길다란 지하철 터널에는 이름이 없다. 한강 양쪽을 강 아래로 연결하는 특별한 구간도 이름이 없다. 이는 지하철을 만든 주체가 지하철을 역의 조합으로 인지했음을 보여준다.



지하철의 또 다른 특징은 창밖이 없다는 점이다. 터널구간은 길이와 존재를 보여줄 지표가 없다. 땅위의 버스노선이 선분으로 인지되는 것과 달리 지하철은 승하차가 이뤄지는 점들의 조합으로 인지되는 것은 바로 그탓이다.

이런 터널구간의 비존재성과 개별승객의 존재성이 충돌한다. 날아가는 화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주장처럼 승객들은 추상적 속도 속에 있지만 전동차 안은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승객들은 서로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 작가들의 대답 = 권순관은 플랫폼에 일정 간격으로 서있는 승객들의 모습을 ‘디지털 메이킹 포토’로 재현한다. 군상들은 언뜻 산만해 보이지만 지하철의 논리에 따라 일정한 질서를 보인다. 바로 옆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정면을 응시한다. 그 시선은 건너편 플랫폼에 있는 사람을 향하지만 창밖을 바라보듯 무표정하다.

인효진은 전동차 안의 시선을 두 가지로 요약해 잡아낸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을 피해 비껴가면서 관음적으로 변해가는 시선이 첫째. 어쩔 수 없이 그러면서도 안 그런 척 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피해 눈을 감아 시선 자체를 소거한다. 두 번째는 루이뷔통 가방 등 명품을 지니고 있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욕망으로서의 시선. 작가는 이들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어 작가 역시 지하철의 두 시선에 붙들려 있음을 증명한다.


» 권순관의 <컨피규레이션3-339>

정윤석의 비디오는 멀뚱멀뚱한 시선만 교차하는 공간에서 살아 있는 존재에 주목한다. 물건 판매자, 특정종교 전파자, 동정심을 구걸하는 자 등이 그들. 하지만 그들 역시 승객의 시선에는 불쾌한 기호로 존재할 따름이다.

또 노충현은 훑고 지나가 아무도 머물지 않는 지하철 공간을 희미하게 흐르는 듯한 붓 터치로 그려냈으며 금혜원은 터널 사진을 통해 있지만 없는 것 같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빗댔다.

이밖에 김정주는 지하철을 모티브로 기괴한 지하세계를 그려내고 이혜승은 지하철이 도시생태계의 일원임을 보여주며 민지애는 욕심이 빚어낸 구룡역을 패러디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상우씨는 “현대인의 동선을 아우르는 지하철만큼 현대 삶의 형식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없다”면서 “이번 전시는 지하철이 현대인에게 미치는 사회적, 심리적 영향을 탐구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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