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인그룹 원더걸스의 교통사고 소식이 주요 포털사이트를 도배했다. 연예인들의 교통사고 뉴스가 터질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가 빡빡한 스케줄로 인한 매니저들의 과로와 졸음운전이다. 연예가는 교통사고 다발지역이다.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는 연예인들의 숫자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 지난 2001년과 2002년 톱가수 김현정의 밴을 운전하다 두 차례 대형사고를 낸 서모 씨의 경우, 운전공포증과 죄책감에 시달리다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연예인의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위험의 질주’를 마다않는 이들. 자신의 ‘상품’을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입에서 단내 나게 뛰는 이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연예인 매니저들의 생활과 애환을 들춰봤다.
1. 매니저도 위·아래가 있다
月60만원 ‘가방모찌’ 로드매니저로 시작
5~6년차 돼야 ‘실장급’ 진정한 매니저로
국내 1300명 정도 활동
현재 국내에서 활약하는 매니저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약 1300여명 정도가 활약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매니저의 90%는 업계 관련자들의 소개로 일을 시작한다. 대규모의 매니지먼트들은 공개채용을 통해 매니저를 뽑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인맥을 통한다.
세븐, 구혜선, 빅뱅 등이 소속된 YG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5월 신입매니저를 공개 채용했다. 1명을 뽑는데 16명이 이력서를 냈다. 채용기준은 운전면허를 소지한 군필자로서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남자다. 학력제한은 없고, 나이는 어릴수록 유리하다. 선배 매니저보다 나이가 많으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안덕근 YG엔터테인먼트 이사는 “3개월 수습과정을 지켜보면 연예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뛰어든 사람인지, 계속 일을 할 사람인지 판단이 선다”고 말했다.
현장매니저를 뽑을 때 가장 우선시하는 덕목은 ‘성실’과 ‘예의’다. 담당 연예인과 선배매니저, PD와 기자들에게 깍듯이 대해야 하고, 어떤 일을 시켜도 묵묵하게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규모가 큰 SM엔터테인먼트, YG, JYP, 싸이더스 등은 공개채용으로 매니저를 뽑는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소위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 매니저가 많기로 유명하다. 어느 대기업보다 미래가 유망하고 국제적으로 뻗어갈 수 있는 분야라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출신학교, 전공에 상관없이 운전대를 잡고 현장매니저 일부터 배운다. 매니지먼트사업이 유망직종으로 부각되면서 매니저 양성 학원도 우후죽순 늘었다. 그러나 기존 매니저들은 학원 수료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차피 몸으로 부딪쳐 익혀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속된 말로 ‘가방모찌’라 불리는 로드매니저(현장매니저)는 처음 매니저를 시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일이다.
연예인과 24시간 붙어다니며 수족처럼 도와야 한다. 운전, 경호, 비서 등 어떤 일도 척척 해내야 한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스케줄을 따라다녀야 하므로 사생활은 있을 수 없다. 업무에 비해 월급봉투는 터무니없이 얇다. 3개월에서 1년정도 견습기간을 거치는데, 보통 60만원 정도를 받는다.
로드매니저들 대부분은 신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계약직이다. 특히 영세한 매니지먼트사에서 일하는 로드매니저들은 쥐꼬리만한 월급마저도 일정치 않아 연예인들이 챙겨주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
2년차가 되면 월 90만~100만원을 받는다. 경력 3~4년차가 되면 팀장이 되는데, 스케줄 조정과 현장매니저 관리가 임무다. 팀장을 달면 120여만원, 5~6년차 실장이 되면 250만~3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실장급이 되야 진정한 ‘매니저’로 불릴 수 있다. 방송국 작가, PD, 신문사 기자들과도 두루 친분을 쌓아 스스로 홍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캐스팅부터 계약 등 주요업무를 맡고, 스캔들이나 사건이 터졌을 경우 온몸으로 해결한다.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경우 실장급에겐 진행비도 지급되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실장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매니지먼트사의 경영진이 되거나, 독립해 자신의 회사를 차린다.
연예가에서 ‘마이더스의 손’, ‘스타제조기’로 불리는 김광수 엠넷미디어 제작본부장은 가수 인순이의 로드매니저로 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김본부장은 김완선, 구본승, 윤상, 조성모, SG워너비 등을 키워내며 후배 매니저들의 ‘롤 모델’로 자리잡았다. 전지현, 김지호, 정우성, god, 한재석, 장혁 등을 발굴한 정훈탁 싸이더스HQ 대표 역시 ‘국민가수’ 조용필의 차를 운전하던 로드매니저 출신이다.
2. 여자 연예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다
“일부 결혼한 사이도 있지만 ‘회사자산’ 건드리는 건 매니저 포기 행위”
매니저와 여자 연예인
연예인과 매니저는 시쳇말로 눈빛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아는 사이다. 서로 믿고 의지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그림자처럼 늘 붙어 다니기 때문에 일부 매니저는 이성 연예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강승호 캔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로드매니저 시절, 함께 다니던 가수 장혜진과 결혼에 골인한 대표케이스. 강 대표는 요즘도 부인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을 ‘관리’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심심하면 불거지는 연예인과 매니저의 ‘부적절한’ 관계도 존재한다. 지난 2000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수 B양의 섹스비디오는 데뷔를 함께 준비하던 매니저가 의도적으로 촬영한 것이었다. 사랑을 맹세하며 순정을 바쳤다가 배신을 당한 케이스도 있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났다가 최근 드라마 제작이사로 컴백한 매니저 김모씨는 10년전 미래를 약속하고 몸이 부서지도록 뒷바라지했던 여가수가 ‘뜨기’ 무섭게 얼굴을 바꾸는 바람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매니저가 신인 연예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그 연예인이 스타가 될 경우,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두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라는 속설이 있다. 연예인의 약점을 최대한 많이 쥐고 있어야 나중에 배신 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민정, 추자현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G1엔터테인먼트의 안성범 이사는 “매니저와 연예인이 성적으로 가까운 사이란 색안경을 벗어달라”면서 “회사의 ‘자산’인 연예인을 건드리는 건 매니저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해사행위”라고 말했다.
3. 결혼식때 폼난다
연예인들이 ‘의리’ 과시… 하객 규모부터 달라
‘뜰 때’까지 결혼식 미루는 매니저도 많아
바빠서 결혼도 못한다
지난 8일, 서울 청담성당 앞에는 소녀팬들이 가득 모였다. 경호원들이 이들을 정리하며 하객을 맞았다. SM엔터테인먼트의 황성욱 매니지먼트팀 팀장(36)의 결혼식장이었다.
이날 결혼식장에는 SM 소속 가수들이 총출동해 황팀장의 결혼을 축하했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동방신기가 급거 귀국했고, 소녀시대, 강타, 슈퍼주니어 등 쟁쟁한 톱스타들이 모여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를 축가로 불렀다.
매니저는 결혼연령이 늦은 대표적 직업 중 하나다. 담당 연예인이 음반을 내거나, 일일드라마, 미니 시리즈 등에 들어가면 7, 8개월 정도는 밤낮 없이 뛰어야 한다. 사생활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자를 만날 시간도 기회도 적다. 이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혼기를 놓치고, 마흔살이 훌쩍 넘어 청첩장을 돌리게 된다.
가끔은 자신이 제작하는 연예인이 ‘뜰’ 때까지 결혼식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연예인의 등급에 따라 매니저 결혼식도 하객들의 규모가 틀려진다. 매니저들은 자신이 공들여 키운 ‘자식’ 같은 연예인이 결혼식이나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해 축하해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god가 대한민국 가요계를 호령할 때 결혼식을 올렸던 매니저 오준씨는 소녀팬들이 하객으로 몰려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
연예인들은 자신을 뒷바라지해준 분신같은 매니저가 결혼할 때 ‘의리’를 과시한다. 월드스타 비는 매니저 결혼식 때 자동차를 선물했고, 김민종 성시경 강호동 김정은 등도 거액의 축의금을 내 연예계에 회자됐다.
4. ‘노예 계약’
신인은 4(연예인) 대 6(회사) 톱스타는 8대2가 관례
최근엔 11대0도 등장 오히려 회사측이 ‘노예’
11대 0 ‘역 노예계약’도 있다
매니저들이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말 중 하나가 ‘노예계약’이다. 90년대 중반 자매그룹이었던 한스밴드가 소속사와의 마찰로 법정에 서며 유행어처럼 퍼진 단어다. 이후 잊을 만 하면 언론을 장식하는 매니저와 연예인의 불공정 계약을 일컫는 트레이드마크처럼 자리잡았다.
돈으로 얽힌 사이다 보니, 그만큼 계약과 관련해 분쟁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요즘은 연예인 지망생들도 워낙 업계 사정에 밝다 보니,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맺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신인이 매니지먼트 계약을 할 때 비용이 많이 드는 처음 2년간은 수익배분율을 4(연예인)대6(회사)으로, 그 후엔 5대5로 나눈다. 중소형 매니지먼트에선 간혹 계약기간 5년에 3(연예인)대7(회사)의 수익배분을 제시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톱스타인 경우엔 상황이 역전된다. 수억원의 계약금을 별도로 받고 8(연예인)대2(회사)로 계약하는 게 관례다. 특히 지난해부터 코스닥에 상장하는 연예매니지먼트사들이 늘면서 ‘11대0’이라는 기형적인 수익배분율까지 등장했다. 연예인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활동을 위한 모든 비용까지 기획사에서 부담하는 식이다.
톱스타의 경우, 가만 있어도 방송 영화 쪽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하므로 굳이 ‘영업’을 뛰는 매니저가 필요 없다는 입장. 업계 관계자들은 “관리비용이 엄청나지만, 신인 끼워넣기나 회사 홍보용 ‘얼굴마담’으로 톱스타를 영입한다”며 “11대 0 계약은 그야말로 제작자가 노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5. 깡패 출신이 많다
옛날 말… 요즘엔 대졸·유학파도 많아
한류 영향, 외국어 능숙한 매니저가 튀는 시대
가방 끈 긴 매니저도 있다?
무식하면서 명품만 챙겨 입는 깡패출신 매니저. 매니저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다.
예전엔 연예가의 이권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주먹’ 출신들이 간혹 매니저로 활동했다. 그러나 매니저계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물갈이가 많이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여러가지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란 해명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깔끔한 옷차림은 기본이지만 명품으로 도배하는 건 잘나가는 기획사 대표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6. 명품으로 치장한다
기획사 대표나 가능한 일
일반인보다 접할 기회 많지만 어쩌다 선물 받는 게 전부
물론 매니저들은 일반인보다 명품을 접할 기회가 많다. 소속 연예인들이 각종 명품 행사장에 초청받거나 외국 촬영을 갈 때 동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지니고 있는 가방이나 지갑, 구두, 넥타이, 양복 등은 담당 연예인들로부터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선물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가방끈이 짧고 무식하다’는 편견을 버려달라는 것도 현장을 뛰는 매니저들의 요청 중 하나다. 학벌보다는 실력이 우선시되는 게 매니저계의 불문율이지만 요즘은 대졸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사람들도 많이 진출했다. 국내 명문대 출신은 물론 유학파도 눈에 띈다.
유학파 매니저 1호로 꼽히는 정영범 스타J 대표는 지난 93년 미국서 그룹 솔리드를 픽업해 한국에 데뷔시켰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중앙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한 정대표는 심은하, 장동건, 김지수, 이승연, 원빈 등을 키워냈다. 특히 한류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인텔리’ 매니저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시대다.
7. 재밌게 산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단한 일이지만 내 연예인 잘 나갈 땐 ‘짜릿’
매니저, 3D 직종. 그래도 꿈은 있다
테이, 세이, 바나나보트 등을 소속가수로 두고 있는 두리스타 박행렬(36) 대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인 그는 지난 94년 매니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혈혈단신 상경했다. 당시 히트드라마였던 ‘종합병원’ OST 음반을 돌리다가, 95년 가수 김정민의 로드매니저로 매니저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매일 새벽 2시30분, 생방송을 마친 라디오PD들이 귀가할 때까지 방송사를 지켰다. 서울 망원동 월세 지하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오전 7시 다시 방송사로 출근하는 고단한 생활이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고생스러운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운전하는 애’로 무시당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며 “‘사람’을 관리한다는 일 자체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작업”이라고 했다.
김정민이 ‘슬픈 언약식’으로 1위를 했을 때 기름값 아껴 모은 9000원으로 삼겹살과 소주를 마시며 눈물의 자축연을 벌인 사연은 지금도 후배 매니저들 사이에 회자되는 일화다.
박대표는 매니저 10년만인 지난 2004년 자신이 피땀을 담아 제작한 가수 테이가 1위를 차지했을 때 MBC 3층 구석에서 가수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그는 “매니저는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들을 꾹 참아내야 하는 3D 직종”이라며 “막연히 연예계를 동경해 매니저를 지원하는 요즘 친구들은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간다”고 전했다. 가수 김현정을 매니지먼트하다가 여성그룹 LPG를 만들어낸 찬2 프러덕션의 강찬이(40) 대표는 “영원히 1등 하는 연예인은 없지만, 매니저는 1등 하는 스타를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꿈 하나로 오늘을 산다”고 말했다.
[김소라 스포츠조선 기자 so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