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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다이빙은 내 운명

venhuh 2008. 1. 18. 22:33

[커버스토리]다이빙은 내 운명

2008년 1월 18일(금) 3:00 [동아일보]



 [동아일보]

선상 레포츠의 꽃 ‘리브어보드’를 푸껫서 맛보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먼 데서 작은 종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종소리는 점점 커진다.

고개를 들었다. 일렁이는 물살과 산호와 작은 물고기 말고는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갑자기 눈앞에 12m나 되는 고래상어가 나타났다. 손에 들고 있던 캐논 셔터를 100번 정도 눌러댔다. 이곳은 태국 푸껫에서 95km 떨어진 시밀란 군도의 수심 20m 바다 속. 딸랑이 소리는 다이버들이 신기한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다른 다이버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다이버 생활 4년, 다이빙 경력 896번 만에 고래상어는 처음 봐요.”

짝을 지어 함께 다이빙을 하던 태국의 다이브숍 ‘마린프로젝트’ 변병흠 강사의 말이다. 다이빙 경력 47번째인 나 같은 초보자로선 행운 중의 행운을 누린 셈이다.

다이빙 체험을 시작한지 3년. 바다 속 세계는 나에게 ‘자유로움’이라는 말의 참뜻을 가르쳐줬다. 육지의 중력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숨 몇 번 깊이 쉬면 엄청난 기암괴석도 훌쩍 뛰어넘는다. 좁은 동굴도 발로 물만 몇 번 차면 스르륵 통과한다. 자신의 숨소리만 있는 고요한 세상에 있으면 인생도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있는 힘껏 달려야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 있는 세상. 매일 일에 쫓기는 각박한 세상에서 어지러움을 느낄 때 바다 속으로 한번 떠나보자.

겨울이라서 어렵다고? 무슨 상관인가. 태국 시밀란처럼 건기(乾期)인 11∼4월에만 문을 여는 바다도 있다. 필리핀, 호주, 홍해, 카리브해뿐 아니라 동해, 제주도 등 한국에도 다이빙 명소가 많다

▲ 영상 촬영: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영상 촬영: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오로지 4박5일 동안 다이빙만 하다

오후 8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6시간 비행 끝에 푸껫에 도착한 건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 30분. 바로 다이빙 전용선으로 갈아타고 잠을 청했다. 지금부터 배에서 4박5일 동안 생활한다. 오로지 다이빙만 하는 ‘리브어보드(Liveaboard)’가 시작됐다.

리브어보드는 통상 2박3일∼4박5일간의 일정으로 짜여 있다. 40만∼80만 원이나 되는 여행상품이라 배에는 항상 뷔페식 음식과 간식이 놓여 있다. 대여용 다이빙 장비, 공기탱크를 충전하는 시설, 에어컨이 달린 2인용 객실, 공용 욕실, 휴게시설, TV, 오디오 등이 갖춰져 있다.

태양이 고개를 내밀 즈음인 오전 7시. 첫 다이빙이 시작됐다. 아직은 약간 어둡고 차가운 바다. 시리도록 투명한 쪽빛 바다 속을 하강하면서 해파리, 스내퍼, 스콜피언피시 등 이름도 낯선 심해의 물고기들을 만났다. 물살에 따라 흐느적거리는 바다채찍산호, 부채산호, 아네모네가 가득한 곳을 지나 기암괴석과 동굴을 봤다. 40∼50분간 다이빙을 한 뒤 상승을 시작했다.

다이빙을 시작하기 30분 전. 어떤 곳에서 물에 들어가 어떤 곳으로 나와야 하는지, 조류의 세기는 어떤지, 만날 수 있는 해양 동식물은 어떤 게 있는지 브리핑을 듣고 장비를 착용한다.

팔다리를 완전히 덮는 다이빙슈트를 입었다. 공기통을 메고, 컴퓨터 시계를 차고, 김 서림 방지제를 바른 코까지 덮는 마스크를 썼다. 다이빙 포인트에 배가 멈추고 경적소리가 울리면 20여 명의 다이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바다로 뛰어든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바다 속 풍광이 멋진 곳이 많다.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당일치기는 어렵다.

첫 다이빙을 마치고 배에 오르니 아침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태국의 대표적 국물 음식인 똠얌꿍, 볶음밥으로 아침식사를 한 다음 잠시 쉬는 사이에 배는 그날의 최고 포인트로 이동했다.

오전 10시 30분 두 번째 다이빙을 하고 나면 열대의 강한 햇살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환하게 열린 바다를 향해 세 번째 다이빙 지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점심식사를 하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시원한 객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한다.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는 안다만 해를 감상하다 보면 인간도 그대로 자연이 된다.

▲ 영상 촬영: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오후 2시에 시작된 세 번째 다이빙을 마치고 쉬고 있는 사이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붉은 자취를 남기고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배 위에서는 다이버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야간 다이빙을 위해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바다를 살펴야 하기에 장비를 더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캄캄해졌을 때야 비로소 붉은색, 오렌지색 등 강렬한 색깔을 드러내는 물고기와 산호들을 보노라면 밤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 수많은 별을 옮겨놓은 듯하다. 이렇게 4박 5일간 경험한 다이빙은 총 14번이었다.

○ 바다에서 니모를 찾다-바다 속 생물들

신혼여행지나 휴가지에서 스노클링을 해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얕은 바다에 엎드려서 먹이를 주며 몰려드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스노클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스쿠버다이빙의 세계가 열린다.

스쿠버(scuba)는 수영이나 육상처럼 신기록을 경신해야 하는 스포츠도 아니고 축구나 야구처럼 득점을 해야 이기는 경기도 아니다.

스쿠버다이버가 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빛깔을 갈아입는 물속에서 각양각색의 열대어와 산호의 군무를 즐길 수 있다.

미국 픽사사(社)가 2003년 만든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도 바다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니모의 진짜 이름은 아네모네피시. 물의 흐름에 기다란 촉수를 내맡겨 이리저리 흩날리는 아네모네(말미잘)에 알을 낳고 산다.

영화에서 바다 속 장면에 늘 등장하며 떼로 몰려다니는 물고기들은 바라쿠다, 스내퍼 등이다.

바라쿠다는 제법 크고 무섭게 생겼다. 두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맴돌면 겁이 날 정도다. 하지만 노랗고 파란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스내퍼를 만나면 열대 바다에 온 기분이 절로 난다.

바다 속 미확인비행물체(UFO)로 불리는 만타레이를 만나는 것은 고래상어만큼이나 다이버를 흥분시킨다. 몸길이 2.5∼6m, 몸무게 500∼1500kg이나 되는 만타레이는 거대한 나비를 보는 듯하다.

▲ 영상 제공= 마린프로젝트

수중 사진작가에게 단골 모델이 되는 물고기도 있다.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가진 라이언피시, 뭔가에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는 앵거피시, 날카로운 이빨은 내보이며 숨을 쉬는 모습 그 자체가 공포인 모레이, 긴 주둥이와 산호에 자신의 몸을 숨기는 재주가 뛰어난 고스트파이프피시, 산호초 위에 바위처럼 있다가 수초 같은 돌기에 먹이가 접근하는 순간 번개같이 낚아채는 스콜피언피시.

수천 가지의 다양한 수중생물이 서식하는 곳은 태국 시밀란 이외에도 이집트의 홍해, 호주 케언스,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 등이 있다.

▲ 영상 제공= 마린프로젝트

배에 오른 지 5일째가 되는 오후 6시. 시밀란에서 푸껫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고래 떼와 밍크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르며 환송해 준다.

그래, 우린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에 충실한 삶을 즐기다 어느 순간 만나고 헤어질 뿐인 것이다.

태국 시밀란 군도=글·사진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리브어보드:Live aboard boat(vessel)의 줄임말.:

배를 타고 생활하면서 다이빙을 하는 여행상품. 하루 만에 되돌아올 수 없는 먼 곳에 배를 타고 나가 다이빙을 하므로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원시 환경인 곳이 많다. 서양에서는 197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는 1990년대부터 다이빙 인구가 늘면서 최근 리브어보드 상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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